CA-FE-2001-0004
2001년 경남도교육청 투쟁4(흑백사진모음)
공동체활동 - 경남도교육청투쟁(2001)
2001
2001년 여름, 경남도교육청 앞에서 열린 "간디학교 합법화와 끊어버린 지원금을 요구하는 시민대회"
이 때 아스팔트 위에서 흘렸던 땀과 눈물의 소중함을 기억하고자, 다소 사진이 많더라도 선별하지 않고 10여 장씩 나눠 게시합니다.
당시 거리에서 학교를 지킨 분들께서 한 장이라도 더 이 사진을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간디학교는 귀족학교가 아닙니다. 교실에 분필이 없어요"라는 피켓 사진이 눈에 띈다(파일번호 0056).
간디청소년학교가 제천이로 이주하며 제천간디학교로 거듭나게 된 계기가 되었던 2001년 경남도교육청 투쟁.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2000년 8월, 경남도교육청은 특별감사를 실시하여 비인가학교였던 간디청소년학교(현 제천간디학교. 이하 ‘중학교’)에 해산명령을 내린다.
간디학교(현 산청간디학교, 이하 ‘고등학교’)로 인가를 받았는데, 인가받지 않은 간디청소년학교(현 제천간디학교, 이하 ‘중학교’)를 함께 운영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인가 받았던 고등학교에 나오는 5명의 교사인건비를 중학교 교사들을 비롯해 모든 교직원들과 나눴던 간디학교 교사회의 임금공동체를 업무상 횡령으로 규정하며 압박의 수위를 높여갔다.
경남도교육청은 중학교를 해산하지 않을 경우 고등학교에 대한 재정지원 중단과 고발 등으로 위협했지만 이듬해 3월 01학번 입학식을 거행한다.
그러자, 도교육청은 고등학교에 재정지원을 중단해버렸고 이는 간디학교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큰 파장을 일으키게 되었다.
비인가 대안교육의 실험에 사회적 관심이 쏠리던 터에 해산명령과 재정지원중단은 그야말로 싹트고 있는 대안교육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학생들과 교사는 물론 부모님들까지 연일 거리로 나섰고, 경남도교육청의 의도와는 반대로 간디학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더욱 높아져만 갔다.
“그것이 알고 싶다” 등 방송을 타게 되면서 오히려 간디학교의 교육철학과 실천활동이 세상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이다.
상황은 급변하여 간디학교에 대해 특별감사를 벌였던 경남도교육청이 거꾸로 국정감사의 대상이 되었고, 국회의원 다수가 사태의 원만한 해결을 주문하게 된다.
그리고 당시 교장이었던 양희창 선생님은 공판을 받게 되었고, 재판부는 2002년 선고유예를 내리게 된다.
재판은 실질적으로 이겼지만, 당시 상황에서 중학과정을 산청에서 운영하는 게 어렵다고 판단한 교사들은 이주를 결정하고 2002년 8월 제천간디학교의 시대를 열게 된다.
그 후 교명을 제천간디학교로 변경하고 중학과정만 운영하던 것을 05학번부터 중고통합 6년과정으로 변경하여 지금의 학제로 자리 잡게 되었다.
또한 산청에 남아 있던 고등학교 교사들은 수년 간 이어온 임금공동체의 정신을 살리고자 ‘간디학교 나눔회’를 조직, 매달 십시일반 회비를 모아 타지역 간디학교와 대안교육의 발전에 힘을 보태고 있다.